[달팽이집 이야기] 이제까지 살았던 원룸들의 기억

장은선
2022-09-04
조회수 398

데스크탑 속의 오래된 사진 데이터를 정리하던 중, 그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던 방 사진들이 나와서 추억에 젖었다.


처음 혼자 살던 시절은 너무 옛날이라 사진이 없다.

정확하게는 사진이 있기는 한데, 방이 너무 좁아서 찍히질 않았다ㅠㅠ;


이 아래는 2010년, 친구 찬스로 일본 가정집에 방을 한 칸 얻어 홈스테이하던 시절의 사진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돌아온 후, 프리랜서로 일감을 긁어모아 살던 시절의 원룸이다.

내가 저 원룸에 들어갔을 무렵, 창문 밖에서 주택 세 개가 부서지고 연이어 원룸텔이 지어졌다.

거의 반 년 동안 공사 소음과 먼지가 너무 심해서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프리랜서라 방에서 도망도 못 가고 반쯤 울면서 일했다.

계약 기간 중에 나가기 위해 다른 세입자를 구했는데, 나도 살기 싫은 방에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를 들이밀어야 내가 나갈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마치 동화 '그리핀의 황금 깃털' 같았다.


2013년, 취직했던 시절에 살던 방. 단층짜리 구옥을 4개짜리 원룸으로 개조한 집이었다.

곰팡이 문제가 심했고 겨울엔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죽을만큼 추웠다. 


2014년, 원룸에 질려버린 나머지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다.

그 즈음 한국에서 막 셰어하우스 붐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다(내가 살진 않았지만 셰어하우스 우주도 이때 생겼다).

간만에 사람 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곱 명이 같이 사는 집이다 보니 멤버가 누구냐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015년, 명지대 앞쪽에 생긴 청년주택에 입주하는데 성공했다.

북향이었지만, 5층 원룸에서 살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항상 1층 아니면 2층이었어서.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끼리 다같이 입주했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활발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이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었지만, 일본에 취직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ㅠㅜ


두 번째 일본 취직.

산겐자야에 7만 5천 엔짜리 2층 원룸(1.5룸)을 얻었다.

동네는 좋았지만 창문이 커서 겨울엔 정말 추웠다. 그리고 방의 크기에 비해서 월세가 정말 후덜덜했다;; 역에서도 꽤 먼데.

이 방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직장 동료와 함께 투룸을 얻어서 옮겼다.


직장동료와 함께 살았던 토요쵸의 JKK 투룸. JKK는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주공아파트 단지 같은 건데 민간주택에 비해서 매우 저렴하다.

외국인도 들어갈 수 있고 보증인도 필요없어서 편했다.

8만엔짜리 집이었기에 월세 부담이 쑥 줄었다. 4만엔만 내면 됐으니까.

역과도 꽤 가까워서(8분 거리) 좋았지만 이곳에서도 오래 살지는 못했다.


이 다음에 들어간 UR주택의 7층 원룸이 내 인생 최고의 안식처였다.

도쿄메트로 도자이센의 역에서 20분 정도 공원길을 걸으면 보이는 14층짜리 단지, 잘 가꾸어진 가로수길과 청춘이 불타오르던 야구장,

고층 빌딩이 없어 탁 트인 도쿄의 마을 정경과, 멀리 지평선 끝에서 보이는 고속도로 도심환상선과, 저녁 8시마다 밤하늘을 수놓던 마이하마의 불꽃. 

10평쯤 되는 그 방의 단면도를 일기장에다 그릴 정도로 정말정말 사랑했다. 

내 팔자에 두 번 다시 이렇게 좋은 방에 들어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구석구석을 촬영해 남겼다. 가능하다면 그 집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결국 일본에서 나오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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