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이야기] 민달팽이에 관한 의식의 흐름 (2-1호)

김가원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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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에 관한 의식의 흐름


가원


2-1호(이지만 우리끼리는 ‘꼼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부르고 있나…요?)는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새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연희동으로 이사 가고픈 가원, 다혜, 은진, 이든, 현정이 뭉쳤고, 은진은 아쉽게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게 되어 현재는 4명입니다.



이든과 이사 전날 미리 청소하러 새집에 왔는데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맨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전주인 가족이 살고 있던 짐으로 가득 차 집 크기가 가늠이 잘 안 됐었는데, 모든 것이 빠져나가 텅 빈 집을 보니 설레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적응이 안 돼서 청소하다가 괜히 이든에게 한 마디 더 걸었던 기억입니다.



청소로 새집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남가좌동 2호집으로 돌아와 마저 헌 집을 뺄 준비를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저와 함께 살았던 소라가 하루 먼저 이사를 나갔기에 본의 아니게(?) 2호집 201호에서 마지막으로 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짐이 다 빠져나간 건물엔 작은 소리도 메아리를 울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스산함에 온종일 짐을 싸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천장 위에는 다혜가 있고…, 한 층 위에는 은진이, 더 위에는 이든이 있지 하면서 무서움을 이겨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길었던 이삿날이 지나, 유럽에 갔던 현정이 돌아오고, 인터넷 없이 아주 긴 2주를 보내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가 패닉에 빠지고, 새집 거실에서 우리끼리 몇 차례 술잔을 기울이고, 감자전과 김치전을 부쳐 먹다 보니 어느새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잘못 타면 안 된다고 농담 섞인 걱정을 해주던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공간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제 본가는 대구에 있습니다. 딱 3월 초에 집에 다녀오려고 계획해놓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에요. 더불어 서울에 있는 달팽이집 가족들의 소중함도 깨닫고 있어요. 저는 원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함께 있으면 100만큼 외로울 걸 그보다 덜 외로워도 되더라고요. 물리적 거리두기(저는 사회적 거리두기보단,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를 하면서도 SNS로, 인터넷으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이 때문이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구나, 나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구나. 몰랐네. 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 새집에서의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입니다. 최근 ‘자기소개’를 할 일이 많은 삶을 살면서, 투명한 틀에 갇힌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뭐 분명히 이것도 나를 설명하는 단어이고 언어이고 표현이지만, 막상 내뱉고 보니 이렇게 나를 규정짓고 싶지 않다는 청개구리 심보 때문일까요. 그런데 달팽이집에서의 시즌2를 시작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몇 가지들이 스스로를 가뒀던 틀을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름 이곳에서 만 2년을 넘겼다고 그동안 여기저기에 참 많이도 ‘민달’ 이야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돌아다녔나, 생각해보니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어요. 나와 하우스메이트들의 관계, 건물 안 다른 입주자들과의 관계, 조합과의 관계, 마을과의 관계. 분명 민달은 제게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깨달은 것은 저라는 사람도 떼놓고 남처럼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뭐랄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습니다. 타인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처럼, 나 자신과의 소통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 그리고 저는 이 역시 관계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그동안 겪었던 개인적인 일들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달팽이집에서 나눈 대화들과 만났던 사람들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태껏 달팽이집 살이에 관해서는 일어나고, 자고, 뭘 먹고, 식구들과 무슨 일을 했고 하는 행위 중심 이야기를 많이 해왔는데, 새로운 기획에 첫 순서를 맡게 됐다고 하니 제가 요즘 겪는 생각의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글로 봐서는 깨달음투성이 일상을 사는 것 같은데, 사실 겉으로 보이는 건 지치기도 잘 지치고, 넘어지기도 잘 넘어지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저라서 식구들에게 보여주기도 부끄럽긴 하지만요. 혹시 2-1의 일상이 궁금하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커뮤니티 페이지에 저희의 일상을 앞으로 많이 올릴 예정이니! 조금의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2호집 아듀 파티에서도 했던 이야기이지만요, 제가 지금 키우는 아보카도가 작은 유리병을 떠나 커다란 통으로 이사 오면서 키가 많이 자랐듯이, 내가 헤엄치고 사는 세계를 어떻게,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세계는 민달로 인해, 민달만큼 넓어졌어요. 저의 반려 식물 아보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보카도가 자라지 않아서 고민하던 제게 해결책을 알려준 건 옆에 있던 혜경과 소라, 달팽이집 식구들이었거든요.



그 크기를 가늠할 순 없지만, 이전과 다른 풍경을 느끼고 있음은 확실합니다. 달팽이의 속도라도 좋으니,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한 걸음 더 내딛으려는 저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달팽이집,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 달팽이집 2호 아듀 파티를 위해 만들었던 영상 앨범의 표지. 티는 안냈지만(?) 내가 구성원의 일원이라는 게 무척 좋았던 날.



▲ 이삿짐 싸던 날, 안녕 달팽이집 2호



▲ 새집에서도 쑥쑥 자라고 있는 아보카도, 연희동 달팽이집 마당에 심을 날을 기다리며(아보카도 씨앗 기증 받습니다)



▲ 우리집 식구들과 주고 받은 것: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현정이 준 유럽발 선물, 해리포터 비밀지도 디자인의 티매트, 다혜가  준 비건 디저트, 이든이 준 딸기 모찌,  다혜 방에 걸어준 마크라메, 나도 이만큼 큰 행잉은 처음 만들어봐서 신났다. 좀 무겁긴 하지만 나름 만족한 결과물, 포켓팅에 성공한 내가 만들고 나눈 감자조림, 현정이 우리집 선물로 사온 잭 다니엘(현정 도착하자마자 뜯었음)



     

▲ 새 집의 일상: (왼)이삿날 밤 이든과 함께한 치맥. 이든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수제 맥주는 정말 맛있다. (가) 새 집에서도 뜨개질을 멈출 수 없다!! 

(오) 은혜님의 선물, 에어프라이어, 저의 잇템이 되었어요..! 얼른 초대하고 싶습니다ㅠㅠ





새 집의 옥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하늘 사진으로 TMI 대잔치를 마치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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