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이야기] 고립되지 않고 자립하고 싶어.

박진아
2020-11-17
조회수 378

고립되지 않고 자립하고 싶어.


<1>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먼 훗날 니 친구 내 친구 마음 맞는 친구 모두 모아서 마을을 이루어서 살자. 라는 얘기를 줄곧 해왔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을 하더라도, 고립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에, 주말에 한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영화도 보고, 작당모의를 하는 그런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마을은 하루아침에 짜잔~하고 만들어지지 않을 꺼라 생각했다. 연습이 필요했고, 먼저 그렇게 사는 곳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 서울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워킹홀리데이 개념으로다가 서울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 겨울, 친구와 함께 살 집을 알아보러 서울 성북구부터 인천 부평까지 돌아다니다가 눈물이 났다. 반지하 집을 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출금이 적게 나오는 적은 연봉의 직장도 원망스러웠고, 무엇보다 이렇게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높은 전세/월세 가격에 화가 났다. 그 서러움에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1+2=?>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을 알게 되었다. 주택협동조합이라는 말이 생소했지만, 일단은 집값이 시세대비 싸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 형식이라 마음에 들었다. LH/SH가 공급하는 원룸 형식의 빌라도 공용공간인 커뮤니티 실이 따로 있고, 이웃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좋았다. 그래,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이 나와 친구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했기에 바로 입주 가능한 [달팽이 5호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알니아

▲ 설겆이 할 맛 나는 부엌                                                                                       ▲ 빨래 할 맛 나는 2층 테라스


<3> 서울에 올라오긴 했는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모든 행사와 강연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SNS를 보며 행사 신청을 부지런히 했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만약에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했으면, 한 달이 넘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7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함께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동네 정보를 얻고, 보드게임을 하고, 마당의 잡초를 뽑으며 즐겁게 견딜 수 있었다. 처음엔 서울에 아는 사람이 3명뿐이었는데, 쉐어하우스에 들어오며 자동적으로 아는 사람이 10명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에 집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있다는 온기가 나를 덜 외롭게 했다.


▲ 내 방에서 마당을 보면 있는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 홍시가 될 때 까지 기다렸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따서 맛있게 먹었다.


<4> 달팽이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상회다.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는 가족, 학교, 동아리, 직장 등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은 쉽지 않다.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고 해결방안을 찾기보단, 리더의 뜻대로 움직이고 따르는 경우가 많고, 나도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두가 의견을 내는데 자유롭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절충안을 찾아가는 달팽이집 반상회를 통해서 초등학생 때 했던 학급회의의 감각이 살아나서 너무 좋다. 이런 운영 방식은 다른 곳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 어느날 저녁, 급 결성된 불멍모임. 본격적으로 불멍하기 전에 먼저 고기를 구워 먹었다.


<5> 달팽이집 5호는 집도 좋다. 위치도 버스정류장에서 1분 컷, 지하철역에서 10분 컷이라 이동이 편리하고, 대로변에 있어서 늦은 밤에도 위험하지 않다. (대신 큰 길 소음이 있다) 2층 단독주택이라 집 안에 계단도 있고, 공용공간도 크다. 거실과 부엌의 크기가 다른데서는 경험할 수 없는 크기이다. 설거지 할 맛이 나는 크기의 설거지통을 비롯해 스케이트보드도 탈 수 있는 거실, 빨래를 햇빛에 바싹 말릴 수 있는 마당까지. 1층 마당에는 길고양이들이 물과 사료를 먹으러 들리는데, 왜 사람들이 고양이를 주인님으로 모시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사료 통이 비었다며 거실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보며, 사료를 채워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홀려 식구들이 하고 있는 고양이계에 들어가 사료 값을 함께 내고 있다. 집의 시설관리도 우리가 직접 하기 때문에 에어컨 청소를 하거나, 커튼 봉을 달거나, 마당에 잡초를 뽑으면서 집에 대한 애정도도 늘어나고 있다.


▲ 자주 찾아오는 고양이가 낳은 새끼. 두달정도 되었는데 벌써 이만큼 컸다. 어미 고양이가 처음에 배가 불룩해서 사료 먹으러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3+4+5> 나의 이 모든 경험은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 직접 공급한 주택에서 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청년이 감당할 수 없는 시세에 비해 저렴한 주거비, 좁거나 낙후되지 않은 좋은 주거환경, 그리고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커뮤니티활동까지. 달팽이집에서 살지 않았더라면 비싸고 좁고 고립된 서울의 자취방에서 나는 더 자주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존엄성이 무너지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의미로 ‘왜 사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나에게 그 대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라고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삶의 방향성에 집중하고 있다. 달팽이집에서 사는 것 자체가 내 삶의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 조합에서 하는 각종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재밌다! 랜선 밥모임, 단풍놀이, 주거 포럼, 반빈곤영화제 참여, 모낙폐 공동행동 시위, 그리고 이음이 활동까지! 유니온과 조합의 행사가 많아서 심심할 틈이 없다. 나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이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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