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 그리고 이웃이 있는 응암 달팽이집 이야기
응암 달팽이집은 은평구에 있다.
통근하는 데에는 왕복 2시간이 걸리고 통학하는 데에는 왕복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은평구라는 입지는 나에게 꼭 맞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모집글에 올라 온 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20살 부터 자취를 하며 여러 자취방을 거쳐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쁨 보다는 외로움과 체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세종에서 신림으로 신림에서 신촌으로 이사를 거듭할수록 나는 뭔가를 포기해야했다.
학업을 위해 세종을 떠나면서는 지척에 살던 이웃들을 포기해야했고,
디지털 피아노를 펼쳐놓을 공간과 어항을 포기해야했다.
그래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4평 원룸이었지만 나는 꾸준히 같은 건물 사람들과 친구들을 불러다 먹이고 재웠다.
하지만 신림에서 신촌에 있는 고시원으로 이사하면서는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사람을 초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각종 요리재료들을 넣어두던 내 키만한 냉장고도 모아두었던 책들도 중고로 팔아버렸다.
추억삼아 보관하던 물건들도 몇가지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에 맡겨두어도 되었을텐데 나는 그 때 화가 났던 것 같다.
월세와 보증금은 성실히 살아봤자 어림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고
이사를 하면 할수록 일상의 제약들은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앞으로도 내 생활공간이 더 나아질 일은 없다고,
지금 버리지 않아봤자 이 다음번에는 어차피 버려야 할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회를 거듭할수록 반으로 작게 접히는 종이 위에 발 끝으로 서서 버티는 그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의 소개로 고시원 월세보다 저렴한 집,
그럼에도 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이 있는 집을 알게 된 것이다.
취향을 따지는 것이 사치 같았던 나에게 그 벽지와 그 방문은
나도 그런 걸 좀 바라도 괜찮다는 메세지 같았다.

입주를 신청하고,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 교육을 듣고, 워크샵을 두 번 했던 것 같다.
나는 워크샵을 두려워하는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데 달팽이집의 워크샵이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겨울에 알게 된 집에 봄에 입주했다.
2020년 봄 내내 입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입주하면 어떤 가구를 어디에 놓을지
누구를 몇명씩 초대할지 식기는 몇 개나 구비해 둘지 김칫국을 그렇게 마셨다.
입주하지 못해도 그냥 이렇게 저렇게 희망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참 즐거웠다.

입주한 후에는 큰 마음을 먹고 이층침대를 샀다.
그리고 그 위에 세종에서부터 쓰던 난방텐트를 얹어놨다.
창문에는 직접 만든 썬캐쳐를 달아놨다.
내 방은 남향이라 아침부터 낮까지 방 안에 가득 무지개가 뜬다.

집에 대해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 무엇이 가장 필수적인가를 고민해야 했는데,
쓸데없이 예쁜 벽지와 쓸데없이 예쁜 방문이
내가 포기했던 많은 쓸데없는 것들과 함께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이웃이 생겼다.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을 알고 지내니
더 이상 바람에 덜컹이는 현관문에 심장이 쿵쾅대지 않고,
공동현관 자동문을 열고 들어갈 때나 도어락을 누를 때 긴장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모여서 쓸데없는 영화를 보며 쓸데없는 게임을 하곤한다.
(지금은 못하지만)
그리고 쓸데없는 내기도 하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내가 걸리는 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어쨌든 이웃이 있어서 좋은 점을 떠올려 보면 아래와 같다.
1.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사람과 자전거 배우는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12살 때 배우다 포기한 자전거를 지난 여름에 다시 도전했다.
우리 아빠도 나를 가르치다 포기했는데
이웃들과 룸메이트가 나를 가르치는 것에 성공했다.
달팽이집 이웃들 뿐 아니라 지나가던 인근 주민들까지 한 번씩 멈춰서서
각자 자전거 타는 요령을 나에게 설명해줬다.
서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며 살았는데,
있는대로 서툴고 답답한 모습의 나를 구경하며 또 가르쳐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이상했다.
뭔가를 잘 못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구나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결국 나는 2주만에 룸메이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을 달리고 달려 한강을 보고 왔다.
자전거를 배우는 내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는데
한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결국 한 번 거하게 넘어졌다.
불광천 굴다리 밑에서 바둑을 두시던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괜찮냐며 물어봐주시고,
자전거도 일으켜 세워주셨다.
뒤늦게 자전거를 배운 기억이 초여름 밤 공기만큼 눅진하고 온기 있게 마음에 남았다.


2. 눈싸움을 할 수 있다.
옥상에서 눈싸움을 했다.
어릴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개구지게 놀았다.
머리에 눈이 묻은 이유는 눈이 내려서가 아니고
우리가 서로의 얼굴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렸기 때문이다.

3. 내가 만든 눈 오리를 같이 감상해줄 사람들이 생긴다.
눈이 정말 펑펑 예쁘게 왔는데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게 억울해서
야밤에 혼자 나가 눈오리를 150마리 정도 만들었다.
응암 달팽이집은 담벼락이 없어 이웃 건물의 담벼락에 올려두었다.
뒷건물 주인아저씨가 다음 날 크게 즐거워하셨다는 후문.


4. 음식 나눔
너무 많이 여러 번 나눠먹어서 나중에는 사진도 안 찍게 되었다.
올리려면 끝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만든 호떡이랑 초콜릿만 자랑하기로 했다.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적게 만드는 건 싫어한다.
국은 3L를 끓이고, 호떡은 한 번에 10장, 초콜릿은 1.5kg를 만든다.
그래서 이웃들이 내 공예의 결과를 함께 감당해준다.
뭔가를 나눠주는 것도 그걸 기분 좋게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이웃의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여건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이웃이 여행을 갈 때,
고양이를 돌봐준다는 핑계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정말 행복했다.

-민트색 벽과 챠콜색 방문 그리고 이웃이 있는 응암 달팽이집 이야기 갑자기 끝-
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 그리고 이웃이 있는 응암 달팽이집 이야기
응암 달팽이집은 은평구에 있다.
통근하는 데에는 왕복 2시간이 걸리고 통학하는 데에는 왕복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은평구라는 입지는 나에게 꼭 맞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모집글에 올라 온 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20살 부터 자취를 하며 여러 자취방을 거쳐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쁨 보다는 외로움과 체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세종에서 신림으로 신림에서 신촌으로 이사를 거듭할수록 나는 뭔가를 포기해야했다.
학업을 위해 세종을 떠나면서는 지척에 살던 이웃들을 포기해야했고,
디지털 피아노를 펼쳐놓을 공간과 어항을 포기해야했다.
그래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4평 원룸이었지만 나는 꾸준히 같은 건물 사람들과 친구들을 불러다 먹이고 재웠다.
하지만 신림에서 신촌에 있는 고시원으로 이사하면서는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사람을 초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각종 요리재료들을 넣어두던 내 키만한 냉장고도 모아두었던 책들도 중고로 팔아버렸다.
추억삼아 보관하던 물건들도 몇가지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에 맡겨두어도 되었을텐데 나는 그 때 화가 났던 것 같다.
월세와 보증금은 성실히 살아봤자 어림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고
이사를 하면 할수록 일상의 제약들은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앞으로도 내 생활공간이 더 나아질 일은 없다고,
지금 버리지 않아봤자 이 다음번에는 어차피 버려야 할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회를 거듭할수록 반으로 작게 접히는 종이 위에 발 끝으로 서서 버티는 그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의 소개로 고시원 월세보다 저렴한 집,
그럼에도 민트색 벽지와 챠콜색 방문이 있는 집을 알게 된 것이다.
취향을 따지는 것이 사치 같았던 나에게 그 벽지와 그 방문은
나도 그런 걸 좀 바라도 괜찮다는 메세지 같았다.
입주를 신청하고,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 교육을 듣고, 워크샵을 두 번 했던 것 같다.
나는 워크샵을 두려워하는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데 달팽이집의 워크샵이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겨울에 알게 된 집에 봄에 입주했다.
2020년 봄 내내 입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입주하면 어떤 가구를 어디에 놓을지
누구를 몇명씩 초대할지 식기는 몇 개나 구비해 둘지 김칫국을 그렇게 마셨다.
입주하지 못해도 그냥 이렇게 저렇게 희망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참 즐거웠다.
입주한 후에는 큰 마음을 먹고 이층침대를 샀다.
그리고 그 위에 세종에서부터 쓰던 난방텐트를 얹어놨다.
창문에는 직접 만든 썬캐쳐를 달아놨다.
내 방은 남향이라 아침부터 낮까지 방 안에 가득 무지개가 뜬다.
집에 대해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 무엇이 가장 필수적인가를 고민해야 했는데,
쓸데없이 예쁜 벽지와 쓸데없이 예쁜 방문이
내가 포기했던 많은 쓸데없는 것들과 함께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이웃이 생겼다.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을 알고 지내니
더 이상 바람에 덜컹이는 현관문에 심장이 쿵쾅대지 않고,
공동현관 자동문을 열고 들어갈 때나 도어락을 누를 때 긴장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모여서 쓸데없는 영화를 보며 쓸데없는 게임을 하곤한다.
(지금은 못하지만)
그리고 쓸데없는 내기도 하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내가 걸리는 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어쨌든 이웃이 있어서 좋은 점을 떠올려 보면 아래와 같다.
1.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사람과 자전거 배우는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12살 때 배우다 포기한 자전거를 지난 여름에 다시 도전했다.
우리 아빠도 나를 가르치다 포기했는데
이웃들과 룸메이트가 나를 가르치는 것에 성공했다.
달팽이집 이웃들 뿐 아니라 지나가던 인근 주민들까지 한 번씩 멈춰서서
각자 자전거 타는 요령을 나에게 설명해줬다.
서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며 살았는데,
있는대로 서툴고 답답한 모습의 나를 구경하며 또 가르쳐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이상했다.
뭔가를 잘 못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구나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결국 나는 2주만에 룸메이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을 달리고 달려 한강을 보고 왔다.
자전거를 배우는 내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는데
한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결국 한 번 거하게 넘어졌다.
불광천 굴다리 밑에서 바둑을 두시던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괜찮냐며 물어봐주시고,
자전거도 일으켜 세워주셨다.
뒤늦게 자전거를 배운 기억이 초여름 밤 공기만큼 눅진하고 온기 있게 마음에 남았다.
2. 눈싸움을 할 수 있다.
옥상에서 눈싸움을 했다.
어릴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개구지게 놀았다.
머리에 눈이 묻은 이유는 눈이 내려서가 아니고
우리가 서로의 얼굴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렸기 때문이다.
3. 내가 만든 눈 오리를 같이 감상해줄 사람들이 생긴다.
눈이 정말 펑펑 예쁘게 왔는데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게 억울해서
야밤에 혼자 나가 눈오리를 150마리 정도 만들었다.
응암 달팽이집은 담벼락이 없어 이웃 건물의 담벼락에 올려두었다.
뒷건물 주인아저씨가 다음 날 크게 즐거워하셨다는 후문.
너무 많이 여러 번 나눠먹어서 나중에는 사진도 안 찍게 되었다.
올리려면 끝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만든 호떡이랑 초콜릿만 자랑하기로 했다.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적게 만드는 건 싫어한다.
국은 3L를 끓이고, 호떡은 한 번에 10장, 초콜릿은 1.5kg를 만든다.
그래서 이웃들이 내 공예의 결과를 함께 감당해준다.
뭔가를 나눠주는 것도 그걸 기분 좋게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이웃의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여건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이웃이 여행을 갈 때,
고양이를 돌봐준다는 핑계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정말 행복했다.
-민트색 벽과 챠콜색 방문 그리고 이웃이 있는 응암 달팽이집 이야기 갑자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