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집을 마무리하며 : 아듀파티와 운영종료

2022-03-07
조회수 1062

이제 진짜 4호 달팽이집의 운영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지난 활동보고 이후에 4호 달팽이집 물건정리 및 청소를 하고 왔는데요, 6년간 쌓여있었던 짐들을 다 빼고 나니 얼마나 휑하고 넓어보이던지!

지난달 월간민달팽이에 이어 이번달에도 4호 달팽이집을 기억하며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그럼 4호집을 마무리한 과정을 알아볼까요?


-1부. 4호집을 기억하며 : 공작단과 민달팽이 입주 (보러가기)

-2부. 4호집을 마무리하며 : 아듀파티와 운영종료


4호집 운영종료를 앞두고 제일 먼저, 현재 4호집에 살고 있는 조합원 분들에게 소식을 전했어요. 

운영종료 소식을 전하고, 다른 달팽이집으로 이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리는 시간을 줌으로 가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줌으로 마무리과정의 대부분을 진행하는것이 아쉬웠네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4호집에 살았던,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식구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아듀파티를 진행했습니다!


초대장을 보내려고 4호집에 살았던 식구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보니 50여명의 식구들이 4호집을 거쳐갔더라구요.

6년이라는 시간동안 50여명의 청년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4호집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아듀파티에서는 4호집을 리모델링한 달팽이집 공작단과 뭐라도 탐사대의 이야기부터

4호집이 입주를 시작했던 시기의 커뮤니티, 그리고 현재의 커뮤니티까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아듀파티에 직접 오지는 못하셨지만, 여러 식구분들께서 추억이 담긴 사진과 안녕 인사를 주셔서 모인 분들이랑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안녕 인사는 1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호집 아듀파티 소감]
- 또래가 모여서 산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고 저한테는 짧았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사람은 남으니까. 앞으로 연락하겠다. (혜선)

-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상과 이야기를 들을수있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서울에서 어디서 살아야할지 모를때 4호집에 살면서 환대를 받고 페미니즘, 환경에도 관심 가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집 환경도 넓고 좋았다. 4호집좋아요. (효경)


- 4호라는 공간의 역사를 듣다보니 살았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집이었구나 싶었다. 다른 달팽이집이 운영되는데 기초가 되어준 집이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추억을 남겨준 공간이다. 4호 스토리 들으면서 지금과 달리 초기에는 달팽이집이 이랬었지 싶었다. 4호를 거쳐간 모든 분들이 이 각박한 세상에서 따뜻하게 지내길. 4호 안녕! (현정)


- 서울에서 방을 구할때 원래는 5호집을 원래 보러갔었는데, 4호집을 한번 보는게 어때요? 해서 4호가 마음에 들어서 살게되었다. 은평구라는 곳 자체를 여기와서 처음 경험했는데, 도서관 서비스 등 좋은 인상을 받아서 다음 집도 은평구에서 구하려고 노력했던것같다. 4호가 20대의 마무리이자 30대 시작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것같다. 오늘 과거 입주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즐거운 곳이었구나 싶었고, 그런 경험을 나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고시원에서도 살아봤지만 타인과 소통할 일이 없었는데, 세어하우스 살면서 이야기 나눌수있어서 좋았고 사무국이라 얘기하는 경험도 색달랐다. 감사합니다. 이 공간에 들어올수있었던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경언)


- 처음으로 독립한 곳이 4호. 보증금 낼 돈이 없어서 고시원 알아보다가 인터넷 기사로 민달팽이를 알게 되어서 활동이 멋있어보였고, 저 사람들 옆에 껴서 활동하고 싶었다. 다음 달팽이집 열리기를 몇달 기다리다가 4호가 입주한다고 해서 왔다. 기사에서 봤던 좋은 사진과 영상은 알고보니 사무국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처음 4호집에 들어갔을때는 실망. 처음에 저의 환상이 깨지면서, 세어하우스가 꼭 즐겁고 재밌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 현실을 사는거구나 했다. 현실을 살다보니 친해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돌아보니 좋았지의 느낌. 감정의 희노애락이 가장 많았던 집이었다. 4호집이 40년동안 고생많았고, 민쿱 사무국 식구들 모두 고마웠습니다. (경원)


- 민쿱들어와서 처음 아듀파티하는게 4호 달팽이집이다. 그래서 아듀파티에서는 뭐를 해야할지 감이 잘 안 잡히는게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들으면서 지금 살고있는 5호의 아듀파티를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아)



그리고 대망의 4호집 정리!!!

6년간 50여명의 조합원들이 거쳐간 자리인 만큼 4호집 안에는 가구며 집기며 짐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감사하게도 여러 조합원분들이 정리하는 날에 와주셔서 생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 시작하기에 앞서서 모임 사람들과 인사를 하구요. 이때 민쿱에 빚을 져서 왔다는 분이 많았다는..ㅎㅎㅎ

처음으로 사용해본 전동드릴로 가구 해체를 해서 1층으로 옮기고

쓰레기 정리도 하구요.

끊임없이 물건이 나와서 도라에몽 주머니인줄 알았던 옥상 창고도 모두 정리하고, 민달팽이 박물관에 들어갈만한 유물을 발견하기도 했죠.(USB)

당근마켓에 팔만한 물건들을 바로바로 팔기도하구요, (전날에 달근마켓에 아직 쓸만한 물건들을 올려서 판매하기도 했어요!)

아닌 물건들은 1층으로 내려놓고 대형폐기물 처리를 했습니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저녁은 4호 달팽이집 바로 아래층에 있는 곱창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마무리 했습니다. 

이날 도와주러 오신 조합원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정리가 모두 끝나고 텅빈 공간을 보니 시원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4호 달팽이집은 2022년 3월 16일부로 완전히 운영종료가 되지만,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이만큼 클 수 있는데에 초석이 되었고

또 여러 조합원들이 거처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어 각자 인생의 한 페이지에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을것 입니다.


4호 달팽이집 진짜 !


엄홍길 대장님의 꿈이 16좌의 등반이었다면, 저로서는 4호 주택의 안정적인 시설관리였습니다. 사셨던 입주조합원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4호 주택은 여러 가지 도전(?)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시설관리로 자주 4호를 방문하면서 여러분들을 알게 된 것이 저의 민쿱에서 좋은 추억 중 하나입니다. 아직 서울의 정겨운 골목 거리가 남아있는 곳에서 많은 추억을 쌓으셨길 바랍니다.
- 무대표 정신으로 직접 리모델링한 4호
- 야인 정신으로 허허벌판 같은 은평구에 민달팽이 집을 만들다.
-호인지기를 갖고 4호에 사셨던 모든 분들 리스펙!

-운영지원팀 찬

혁신파크에 출근하면서 집을 구할 때 4호랑 5호 중에 고민을 했었어요. 일터와 더 가까운 5호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만 4호 소식을 들으면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참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5호 2층 거실에서 4호 사시는 경원, 준희님이랑 햇볕 쬐며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집이 생기기까지 은평, 서대문을 중심으로 함께 살았던 초창기 멤버들이 보고 싶네요. 저도 이제는 이사했지만, 다들 어디서 사시는지 몰라도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따숩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옆동네 5호에서 3년 반 살았던 시도가-

처음 민쿱에서 일할 때 자주 갔었던 달팽이집이 4호였습니다. 

입주조합원들이 조합 활동에 여러번 함께 해주시면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몇번 있었네요.

당시 많은 도움과 소통이 있어서 따듯한 인상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4호는 종료되지만 조합 초기 때 공급됐던 집인만큼 많은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도 정리가 잘 되서 조합의 기록에 잘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주거문화팀 기웅

어느덧 세 번째 달팽이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근데 4호집이 가장 추억이 많네요~

예비입주자 설명회서부터 ~ 입주 전 안닦이는 바닥청소, 입주 7개월만에 진행한 집들이, 매월 했던 반상회, 식구의 기타소리, 식구들과의 노래방 갔던 거, 놀러갔던 거가 생각나요. 4호집에 입주하면서 민쿱, 민유 회원활동을 시작했고 민유에서 일도 하게 되었네요 ㅎㅎ

4호집에서 만난 친구들은 세상 제일 편안한 친구들이에요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있어요. 제가 나간 이후에는 새로운 식구들이 추억을 쌓아갔을텐데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저의 2년 6개월의 추억이 저장되어 있는 4호집, 1980년에 지어져 이제 만42세가 됐는데요. 빌라에서->유치원에서->셰어하우스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지요. 그런 4호집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서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