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에세이] 함께라서 싫지만 함께라서 가능한 by 시도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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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는 시간 빼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 봄과 가을은 유독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쬔다. 


5호집에 산지 3년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이 집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사람이 되었다. 세번째 겨울을 맞이하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커뮤니티 내에서도 희노애락이 있었지만 기쁘고 즐거운 감정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감정이 짜증나고 미운 감정인 것 같다. 그 안에는 서운함도 있고 자책감도 있고 억울함도 있다. 미움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처럼 아주 작은 것도 몸서리치게 만든다. 개인에게도 어려운 감정이지만 주변을 긴장시키는 상황도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동체 내의 이런 감정들은 암암리에 함께 다루게 된다.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는 늘 크고 작은 긴장이 있다. 특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개인간의 적절한 거리조절이 중요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나누며 긴장을 조절하기도 하고 놀이와 농담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기도 한다. 이해당사자가 아닌 구성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의 감정을 해소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공동체는 일상적으로 긴장을 꺼낼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긴장이 과도해질 때 공론의 장을 열어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내가 5호집에 살면서 긴장을 대하고 다루는 방식이다. 


나도 처음이 있었다. 기존 입주자들이 살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실수해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칠까봐 매번 질문했다. 빨리 사람들과 친해지고 집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소해야 나도 이곳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행히 처음 만난 집사람들 모두 친절하고 활달한 사람들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한 명이 나가고 새로 한명이 들어오고, 두 명이 나가고 새로 두 명이 들어오는 등 집사람들이 바뀌면서 기입주자로써 새 입주자를 맞이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새로 온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집의 여러가지 부분들을 알려주는 일들이 처음에는 신나고 즐거웠지만 자주 하다보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나이또래 사람들 특성상 정주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빈번하게 교체되는데, 새 입주자들이 집의 성원이 되도록 돕고 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을 하게되기까지는 품이 많이 들었다. 이 과정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잘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소통을 원하지 않거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생겼다. 


빈번한 갈등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의 기준이 소통되지 않아서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면  ‘새로 온 입주자는 왜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할까?’ 라고 생각한다. 새 입주자는 ‘다들 하길래 눈치껏 분위기 보고 판단한 것인데 왜 나한테만 문제제기하지?’ 란 생각이 든다. 마음의 문이 닫히면 모든게 다 문제가 된다. 지뢰밭에 모두가 몰려와 말을 보태다보면 너도나도 고단하고 피곤한 상황이 지속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나눠보지만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개별이 가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겠지만 가장 큰 피해는 전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사사건건 서로에게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가끔 컵이 안 씻어져 있어도 ‘누구가 엄청 바쁘게 나가더니 씻는 걸 깜빡 잊었나보네’ 하며 남의 컵을 씻어주고 카톡으로 생색을 내는 게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방식인데 긴장 상황이 되면 이거 누가 그런거냐며 단톡방에 사진이 한장 올라온다. 모두가 자신이 아님을 증명하기 바쁘고 범인은 죄인이 된다. 실수가 아니라 대역죄가 되는 분위기가 나는 불편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갈등 상황을 버티고 끊임없이 상대에게 말을 거는 노력이 있어 우리집의 커뮤니티가 대체로 잘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식구들이 사무국이나 갈등관리 전문가가 와서 빨리 이 갈등을 종식시키길 기대하기보다 (누가 온다고 갈등이 종료되지도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서로에게 애정을 갖고 대화하길 바랬다. 문제의 무게를 오바하지도 말고 축소하지도 말고 문제가 되는만큼만 다루길 바랬다. 결과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지만 나는 우리가 공통의 경험 속에 조금은 자랐을꺼라 생각한다. 문제해결을 외부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마주하는 힘이 커졌을꺼라 생각한다.


직면하는데는 높은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혼자였다면 피했을 상황을 함께라서 직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이 갈등 앞에서 피하고 숨어버리는 전술을 사용한다. 그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고통을 종식시키는 길이라 여긴다. 지나보면 그 상황은 반복되고, 피한다고 능사가 아님을 알게되지만 직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갈등의 고통 속에 머무를 수 있었던 건 늦은 밤까지 집의 이슈와 관계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 덕분이다. 함께 사는 만족은 높이고 스트레스는 줄이려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고통이 성숙의 재료가 될 때 고통은 더이상 고통의 기억만으로 남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 시간이 더 좋은 우리로 나아가는 재료로 기억되면 좋겠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함께 사는 훈련을 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갈등은 나를 단련시키는 고난이도 장애물이었는데 매번 고비를 넘으며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살 때 항상 존재하는 동반자같은 것이구나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존재해준 5호집을 스쳐간 모든 조합원들에게 고맙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사는 훈련중이다.


2019.12.06. 5호집 입주조합원 시도

* * 여름의 마당. 풀도 무성하고 빨래도 바싹 마른다. 갈등에도 사계절이 있는데 갈등이 여름일 때는 잡초같은 말이 무성하고 서로에 대한 마음은 바싹 말라있다. 장마비를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