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 수첩] 새로운 시작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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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설명) 상근수첩은 단체 상근자들의 단상을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 새로운 시작 >


정기웅



 두 달.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매번 그렇듯 돌아보면 매우 빠르게 지나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직 두 달밖에 안되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더디게 시간은 가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 나의 중요한 가치들을 이곳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그 가치가 무엇인지는 비밀이다. 아직 나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내가 맡은 업무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모든 새로운 일이 그렇겠지만, 본격적인 활동이 처음인 나에게 모든 언어와 미션 그리고 실무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니 덜컥 든 생각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시간이 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초조했다.

주거권 이라는 단어는 점점 무겁게 다가왔고, 주택협동조합도 알면 알수록 생소했다. 당장은 내 업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 이상을 하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었다. 모든 사람의 주거권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 청년의 주거권을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주거권을 위해 나는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생 때부터 소위 운동이라 불리는 활동에서 내가 중요시 여겼던 것은 당사자성이다.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지라도 당자사성이 떨어지면 나는 항상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감수성과 공감능력 만으로 이끌어 나가기엔 내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유부단한 나에게도 이제 청년 주거권은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되었고, 그 중심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니 말 한마디가, 행동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진다. 단순히 옆에서 문제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단체에서 떼는 나의 첫 발걸음은 마치 높은 다이빙대에서의 한걸음처럼 설레는 동시에 두렵다.


 그래서 부러웠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옆의 친구들이. 먼저 이 문제에 뛰어들어 사회에서 필요한 권리를 외치는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은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바쁘게 움직이는 옆의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 막 시작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천천히 알아 가면 된다고 하는 말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같이 뛰고,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커질 뿐이다.


 두 달. 이제는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아직 완벽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이 최소한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시기다. 그리고 일이 익숙해지자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빠진 만큼 몸이 귀찮음과 익숙함에 젖어 무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몸이 아니라 머리가 무거워지기 위해 더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싶다. 직장, 집, 관계, 돈, 미래, 이 모두가 불안정하다고 말하는 청년은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더 유연하고 불안정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청춘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젊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 젊으니까 괜찮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고민하고 싶다.


2019년 5월, 점심시간의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