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기] 흔치 않은 조직에서의 한 달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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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일기]


안녕하세요, 인턴입니다.

아, 저는 예전에 5호집에 거주하였던 정인욱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 달간의 인턴 경험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준 민쿱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코로나가 창궐하여 우리 모두 집 안에 꼭꼭 숨어있어야 했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강의가 듣기 싫어서 갑작스럽게 휴학을 하고 어언 3개월. 나는 심심함에 익숙해지고 있었어요. 또한 무기력함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죠. 팬데믹으로 사태가 전환되고 장기화될 것이 명확해 보이면서 군대를 신청했어요. 그리고 그걸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내가 도움을 받았던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고민을 했어요. 그렇게 민달팽이로의 1달간의 인턴 생활이 시작되려고 했죠.


나는 당사자로서의 고민에 굉장히 집중되는 편이에요. 학교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당시 나의 생활과 가장 밀접했던 ‘어떤 것’을 주제로 해요. 그래서 주로 나, 그리고 또래에게 시의성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었어요. 언젠가는 1년간의 달팽이집 생활에서 느낀 청년의 시간과 자원을 주제로 보고서를 쓴 적도 있었고요. 물론 잘 쓰진 못했지만 말이죠. 민달팽이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이유도 그와 같아요. 나는 ‘청년’이고, ‘자취’를 하고 있어요. 기숙사와 자취방을 오가는 불분명한 주거 상태는 ‘내 집’을 느끼기 힘든 시간이었고요. 그리고 나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분명히 민달팽이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말이죠. 그래서 앞에 말한 대로 나는 민달팽이에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내가 인턴이 되는 것은 실제로 도움보다는 상근자분들에게 새로운 업무가 생기는 것에 가까울 수밖에 없기에, 스스럼없이 열정페이를 자처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자잘한 잡무들이라도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연락을 전해 받은 민달팽이 측에서는 회의를 거쳐 나에게 함께할 수 있겠다는 답변을 주셨어요. 교통비 정도지만 활동비도 준다고 했어요. 좋은 쪽으로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죠. 그렇게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규모가 작고, 평등한 구조의 조직에서는 스스로 일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제가 이걸 아는 이유는 주변에서 몇 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는 명제처럼 들어왔기 때문이죠.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회든, 동아리든 어떤 일을 할 때던 일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일이 없다시피 할 수 있어요. 축제 주점에서 발에 불나게 돌아다니는 누군가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처럼 말이죠.


제게 주어진 업무는 ‘민달팽이에 필요한 설문 만들기’와 ‘전산화 작업’이었어요. 민달팽이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시도와 함께 설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어요. 설문에 대한 지식 없이 자력으로 만들 수 있는 설문의 한계 일찍 보였어요.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전산화 작업을 먼저 쭉 진행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시도와 한솔과 함께 이야기해서 만들어진 설문지를 신뢰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설문의 책임자인 제가 부족하여 설문의 구성과 요소, 논리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시도, 한솔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함께 해주어 그럴듯한 설문지가 되었으니 다들 나중에 열심히 참여 해주시길 바랍니다!)


 

(직접 만든 설문지 배너인데 달팽이가 귀여운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그런 저를 위해서 민달팽이에서는 기다려주기도 하고, 다른 기회를 주기도 하며 인턴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주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더 발전시키기 어려울 것 같던 설문지에 피드백을 주고, 속속들이 새로운 업무를 배치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런 배려 속에서 제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 알아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도 모르는 정도였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앞서 말했듯 각자 일을 찾아서 하는 곳에서 짧은 시간에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서기란 쉬운 건 아니에요. 무언가를 함께 하기에 필요한 역량은 쉽게 쌓이지 않아요. 그만큼이나 역량 부족을 우연한 기회에 일찍 깨닫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길지 않은 인턴 기간 이었지만, 수많은 배려와 혼자 생각하도록 기다려주신 시간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얼굴이...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저는 전산화 작업 중이에요)


민달팽이는 목요일 점심마다 다 같이 밥을 먹은 후 전체회의를 해요. 이때 조직문화 회의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요. 좀 더 나은 조직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서 민달팽이가 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죠. 조직문화 회의에서는 어떠한 키워드를 통해 논의를 진행해요. 제가 있을 때는 새로운 상근자분들이 오시는 걸 기점으로 조직 내 호칭 문제에 대해서 다루었어요. 여기서 특별한 건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접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거였어요. 사실 어떤 조직이라도 스스로 문제를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대부분은 애매하게 친하고, 어색한 사이들 속에서 굳이 그 문제를 드러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민달팽이는 입주자들의 평등문화를 지향하고 지원하는 만큼 자신의 조직문화 또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이상적인 실천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회의를 통해서 합의에 이르더라도 지금까지의 관성 때문인지 많은 변화를 느끼진 못한 거에요. 그날 회의를 통해서 호칭의 문제는 당사자가 불러주길 바라는 형태로 하기로 했으나, 아직은 변화가 없어 보여요. 나이, 성별 등에 구애받는 호칭은 조직 내에 보이지 않는 위계를 생산하고, 차별 언어가 될 수 있고, 특히 이번 논의의 시발점인 신규 조직원들에게는 더욱 그 위계나 차별이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또한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조직원에게도 그렇겠죠.


문화를 바꾸는 건 일상을 바꾸는 일이에요. 가장 힘든 건 일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하듯이,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가정에서 집안일이 어머니의 일이 아닌 가족의 일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이나 큰 노력이 드는 일이에요. 그리고 혼자만의 일상이 아닌 조직의 일상을 바꾸는 것은 더 큰 힘이 들겠죠. 서로 다른 속도의 변화 속에서 먼저 변화한다고 해도 천천히 움직일 듯 말 듯 한 이전 문화의 관성에 의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또한 합의의 결과에 딱히 노력하지 않는 행동은 합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어 껍데기만 남은 회의가 될 수 있기에 조심하면 좋을 듯해요! 그렇기에 조직의 노력이 의미가 있으려면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민달팽이는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지속적인’ 발화를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변화할 거에요. 서로에게 수고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하는 조직은 사실 거의 처음 봐서 신기하고 부럽기도 해요. 공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관계가 많은 민달팽이에서는 그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렇게 노력하는 일이 더 멋있어요. 사실 회사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놀러다니는 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만큼 서로에게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민달팽이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얻은 것 중 가장 큰 건은 이렇게 노력하는 집단에 함께 해본 경험이에요. 제가 깊숙한 내부자가 되지 못했거나, 실제로 회의에 참여한 횟수가 적어 ‘찐’ 민달팽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집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중 중요한 경험이에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알게 되어 좋은 건 당연해요. 남은 시간에 제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하더라도 이곳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에요. 함께한 시간에 감사합니다.